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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카포트 안에 있는 캐릭터는 누구일까? — 콧수염 아저씨와 비알레띠 이야기

Benjamin J 2026년 6월 12일 5분 읽기

주방 가스레인지 위, 알루미늄으로 빛나는 8각형 주전자. 그 옆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한 남자가 서 있습니다. 단정한 정장에 풍성한 콧수염, 그리고 하늘을 향해 검지손가락 하나를 치켜든 자세. 모카포트를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궁금했을 겁니다. "이 아저씨, 대체 누구지?"

결론부터 말하면, 그는 가상의 마스코트가 아닙니다. 실존 인물의 캐리커처입니다. 그것도 이 회사를 세계적 브랜드로 키워낸 장본인, 비알레띠(Bialetti) 2대 경영자 레나토 비알레띠(Renato Bialetti) 본인이죠. 이탈리아에서는 그를 "로미노 코이 바피(L'omino coi baffi)" — '콧수염 난 작은 남자'라고 부릅니다.

비알레띠 모카 익스프레스와 오미노 코이 바피 로고
모카 익스프레스 옆면의 '오미노 코이 바피' — 손가락을 치켜든 콧수염 아저씨 (이미지: Bialetti Industrie, CC BY-SA 4.0, Wikimedia Commons)

1933년, 빨래터에서 태어난 발명품

이야기는 캐릭터보다 커피포트가 먼저입니다. 1933년, 이탈리아 피에몬테의 작은 마을 크루시날로(Crusinallo)에서 알루미늄 공방을 운영하던 알폰소 비알레띠(Alfonso Bialetti)가 모카 익스프레스를 세상에 내놓습니다. 발명의 영감은 의외로 동네 빨래터였다고 전해집니다. 당시 세탁통은 가운데 관을 통해 끓는 비눗물이 위로 솟구쳐 빨랫감 위로 분사되는 구조였는데, 이 '증기압으로 물을 밀어 올리는' 원리를 커피 추출에 옮겨온 것이죠.

이름의 '모카(Moka)'는 예멘의 항구도시 모카(Mokha)에서 따왔습니다. 아라비카 커피의 본고장으로 꼽히던, 당시 가장 귀한 커피가 출항하던 도시입니다. 거대하고 비싼 에스프레소 머신이 카페에만 있던 시절, 모카포트는 '집에서 마시는 에스프레소'라는 타이틀로 새로운 일상을 열었습니다.

가스불 위에서 추출 중인 비알레띠 모카 익스프레스
불 위에서 커피를 뽑아내는 모카 익스프레스 — 90년이 지나도 구조는 그대로다 (사진: Berteun Damman, Public Domain, Wikimedia Commons)

아들 레나토, 승부수

발명은 아버지의 몫이었지만, 신화는 아들이 썼습니다. 2차 대전이 끝난 뒤 회사를 물려받은 레나토 비알레띠가 경영을 시작했을 때, 모카포트는 여전히 지역 공방 수준의 물건이었습니다. 시장에는 이미 카피 제품이 넘쳐나고 있었죠. 레나토의 답은 단순하고 과감했습니다. "우리 포트를 다른 포트와 구별되게 만들자." 그 수단이 바로 광고, 그리고 로고였습니다.

1953년, 모데나 출신의 만화가이자 애니메이터 파울 캄파니(Paul Campani)가 레나토의 얼굴 — 특히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던 풍성한 콧수염 — 을 바탕으로 캐리커처 캐릭터를 그려냅니다. 손가락 하나를 치켜든 제스처는 이탈리아 바(bar)에서 "운 카페!(커피 한 잔!)"를 외치며 주문하는 바로 그 동작입니다. 모카포트 옆면의 아저씨는 지금 이 순간에도 커피를 주문하고 있는 셈이죠.

"Eh sì sì sì… sembra facile (fare un buon caffè)!"
— 에 시 시 시… 쉬워 보이지! (좋은 커피 한 잔 만드는 거 말이야)카로셀로 광고 속 오미노 코이 바피의 시그니처 멘트

이 캐릭터는 1958년부터 이탈리아 국영방송의 전설적인 광고 프로그램 카로셀로(Carosello)의 애니메이션 광고 주인공으로 전파를 탑니다. 50~60년대 이탈리아의 거실에서 오미노는 매일 밤 등장하는 친숙한 얼굴이 되었고, 이탈리아 TV 광고사 전체를 통틀어 가장 사랑받는 아이콘 중 하나로 남았습니다.

광고가 바꾼 숫자

  • 레나토가 회사를 맡을 무렵 모카포트 생산량은 연 1,000개 수준
  • 캐릭터와 카로셀로 광고 이후 연 약 400만 개로 폭증
  • 1950년대 이래 누적 판매량 3억 개 이상 — "이탈리아 가정의 90%에 모카포트가 있다"는 말이 나온 배경
  • 모카 익스프레스는 런던 디자인 뮤지엄, 쿠퍼 휴잇, MoMA 등 세계 유수 디자인 박물관의 소장품이 됨
비알레띠 모카 익스프레스의 Made in Italy 각인 디테일
비알레띠 모카 익스프레스의 디테일 — 오미노 로고는 진품과 카피를 가르는 표식이었다 (사진: Jcmontero, CC BY-SA 4.0, Wikimedia Commons)

왜 하필 '자기 얼굴'이었을까

오늘날의 시선으로 보면 CEO가 자기 캐리커처를 제품에 새기는 건 다소 우스워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 에는 영리한 전략이었습니다. 첫째, 알루미늄 8각 포트는 특허가 만료되면 누구나 베낄 수 있는 형태였지만, 얼굴은 베낄 수 없습니다. 오미노가 새겨진 포트만이 진짜 비알레띠라는 신뢰의 표식이 된 거죠. 둘째, '회사 뒤에 사람이 있다'는 메시지였습니다. 콧수염 아저씨는 품질을 자기 얼굴로 보증하는 주인장이었던 셈입니다.

실제로 오미노는 단순한 로고를 넘어 비알레띠라는 브랜드의 인격 그 자체가 되었습니다. 카로셀로 방송이 끝난 뒤에도 캐릭터는 포트 옆면에 그대로 남았고, 회사가 비알레띠 가문의 손을 떠난 뒤에도 — 레나토는 1980년대 후반 회사를 매각했습니다 — 단 한 번도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비알레띠 모카 미니 익스프레스 1잔용
1잔용 모카 미니 익스프레스 — 크기가 바뀌어도 콧수염 아저씨는 늘 그 자리에 있다 (사진: Coyau, CC BY-SA 3.0, Wikimedia Commons)

마지막 이야기 — 모카포트에 잠들다

이 브랜드 스토리의 결말은 어떤 소설보다 극적입니다. 2016년 2월, 레나토 비알레띠가 93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세 자녀는 아버지를 기리는 방법으로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장례를 택했습니다. 그의 유골을 거대한 모카 익스프레스 레플리카에 안치한 것입니다. 유골함이 된 모카포트에는 물론, 옆면의 오미노 코이 바피가 그대로 새겨져 있었습니다.

북이탈리아 몬테부글리오 — 그가 태어난 마을 — 의 작은 성당에서 신부가 모카포트 모양의 유골함에 향을 피웠고, 약 200명의 조문객이 그 장면을 지켜봤습니다. 모카포트는 이후 오메냐의 가족 묘지에 아내 곁으로 묻혔습니다. 평생을 모카포트에 바친 남자가, 말 그대로 모카포트 안에서 영면에 든 것입니다.

콧수염 아저씨

이제 모카포트 옆면의 콧수염 아저씨를 다시 보면 조금 다르게 보일 겁니다. 그는 90년 전 빨래터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아버지의 발명품을, 자기 얼굴을 걸고 전 세계 3억 가정의 주방으로 밀어 넣은 남자입니다. 손가락을 치켜든 그 자세는 여전히 같은 말을 하고 있습니다. "운 카페!" — 자, 커피 한 잔 어떠세요.

이 글의 이미지는 모두 Wikimedia Commons의 퍼블릭 도메인 및 CC 라이선스 자료를 사용했으며, 각 캡션에 출처와 라이선스를 표기했습니다. 본문 내용은 이탈리아어 위키피디아(Omino coi baffi), CNN·ANSA·UPI 등의 2016년 보도, The Art Post Blog 및 Zogia 아카이브 자료를 참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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