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이 모든 사진을 삼킨 시대에, 줌도 없고 4K 영상도 없는 28mm 단렌즈 똑딱이가 150만 원을 넘긴다. 그런데도 리코 GR은 여전히 '컬트'다. 2025년 가을 등장한 GR IV를 렌즈 삼아, 28mm라는 화각과 '작은 카메라'라는 물건이 왜 아직도 값을 하는지 들여다봤다.

리코 GR 시리즈는 1996년 필름 콤팩트 'GR1'에서 출발해 2013년 APS-C 디지털로 넘어온 뒤, GR · GR II · GR III를 거치며 한 가지 고집을 30년 가까이 지켜왔다. 주머니에 들어가는 크기, 한 손으로 끝나는 조작, 그리고 바꿀 수 없는 단 하나의 28mm 단렌즈. GR IV는 이 계보의 최신작이면서, 겉모습은 그대로 둔 채 속을 거의 전부 갈아 끼운 모델이다.
GR IV가 새로 바꾼 것
GR IV는 렌즈 · 센서 · 영상엔진이라는 핵심 3요소를 모두 새로 설계했다. 화소는 약 2,574만(APS-C 후면조사형 BSI CMOS)으로 올라갔고, ISO는 최대 204800까지 확장됐다. 손떨림 보정은 3축에서 5축으로 바뀌어 최대 6스톱을 잡아준다. 그러면서도 바디는 전작보다 더 얇아졌다(약 109.4 × 61.1 × 32.7mm).
대신 빠진 것도 분명하다. 4K 영상은 없고(최대 풀HD 1080/60p), 전자식 뷰파인더와 틸트 액정도 없으며, 방진방적 보증도 없다. GR IV는 '못 하는 것을 채우기'보다 '잘하던 것을 더 잘하기'를 택한 카메라다. 그 선택이 마음에 드는지 아닌지가, 사실상 이 카메라를 살지 말지를 가른다.
왜 하필 28mm인가
GR의 정체성을 단 하나로 줄이면 결국 28mm 화각이다. 28mm는 사람 눈보다 살짝 넓게 담기는 광각이다. 피사체 하나만 도려내는 망원과 달리, 인물과 그가 선 거리·간판·골목까지 한 프레임에 끌어들인다. 거리 사진가들이 28mm를 두고 "넓게 그물을 던지는 느낌"이라고 말하는 이유다. 장면 전체를 이야기로 만들고 싶을 때 28mm만 한 화각이 드물다.
이 화각은 사진가를 가깝게 만든다. 28mm로 인물을 프레임에 꽉 채우려면 2m 안쪽까지 다가가야 한다. 종군 사진가 로버트 카파가 남긴 "사진이 별로면 충분히 다가가지 않은 것"이라는 격언을, GR은 렌즈로 강제한다. 멀찍이 숨어 망원으로 훔치는 대신, 장면 안으로 걸어 들어가게 만드는 카메라다.

스냅 포커스 — 필름 카메라의 감각
28mm와 짝을 이루는 GR의 진짜 무기는 스냅 포커스(Snap Focus)다. 초점 거리를 1m·1.5m·2m처럼 미리 정해두고, 셔터를 누르는 순간 그 거리에 즉시 초점을 맞추는 방식이다. 라이카 M 레인지파인더의 존 포커싱과 똑같은 발상으로, 자동초점이 헤맬 틈을 아예 없앤다.
광각 + 조리개 조이기의 조합이 이걸 가능하게 한다. 28mm 렌즈를 F8까지 조이면 약 1.5m부터 무한대까지 대부분 초점이 맞는 깊은 심도가 생긴다. 거리만 어림잡아 두면 화면을 안 보고 허리춤에서 찍어도(노 파인더) 웬만하면 다 들어온다는 뜻이다. AF가 오히려 방해되는 저조도 거리 촬영에서 스냅 포커스가 빛을 발하는 이유다.
이 조작감 때문에 GR IV는 종종 "디지털 GR1"이라 불린다. 메뉴 깊숙이 들어가지 않아도 손끝으로 끝나는 물리 다이얼, 군더더기 없는 인터페이스, 그리고 필름 같은 색감이 아날로그 카메라의 촉감을 그대로 옮겨놓았기 때문이다. 일본 거리 사진의 거장들이 GR을 손에 들면서 이 시리즈는 '거리의 카메라'라는 별명을 얻었고, 그 정체성은 GR IV에도 고스란히 이어진다.

28mm의 한계, 그리고 40mm라는 선택지
28mm가 만능은 아니다. 광각 특유의 원근 왜곡 탓에 얼굴을 단독으로 클로즈업하는 인물 사진엔 까다롭고, 멀리 있는 피사체를 끌어당기지 못한다. GR IV는 인카메라 크롭으로 35mm·50mm 화각을 흉내 내지만 어디까지나 화소를 잘라내는 방식이라 해상도 손해가 따른다.
그래서 리코는 전작에서 GR IIIx라는 40mm 환산 렌즈 버전을 따로 냈다. 40mm는 인물·테이블 컷·일상 스냅에 더 자연스러운 화각이다. GR III 세대 사용자들 사이에서 "거리엔 28mm, 인물·압축감엔 40mm"라는 정리가 굳어진 이유다. 28mm의 개방감을 원하면 GR(28mm), 한 걸음 물러난 단정한 화각을 원하면 IIIx(40mm) — 같은 철학의 두 갈래라고 보면 된다.

그래서 '카메라'의 값은 어디서 나오는가
GR IV의 미국 권장가는 1,499.95달러. 전작 GR III 출시가 대비 60%대 인상이라 "이 가격에 4K도 없냐"는 반발이 분명히 있다(국내 체감가는 환율·유통에 따라 다르다). 그럼에도 GR이 값을 한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는 스펙표 바깥에 있다.
첫째는 휴대성이다. 진짜 좋은 카메라는 '지금 손에 있는 카메라'다. GR IV는 청바지 주머니에 들어가고 약 0.6초 만에 켜져 곧장 찍힌다. 가방에 넣고 다니다 결국 안 꺼내는 미러리스와, 늘 들고 다녀 셔터를 누르게 되는 GR의 결과물은 다를 수밖에 없다.
둘째는 존재감 없음이다. 렌즈가 거의 튀어나오지 않고 브랜드 각인도 절제돼 있어, GR은 '똑딱이'처럼 보인다. 큰 카메라를 들이대면 사람들이 굳지만, GR 앞에서는 경계를 풀어 자연스러운 장면이 남는다. 작동음도 조용하다. 이 '눈에 안 띔'은 거리 사진에서 스펙으로 환산되지 않는 자산이다.
리코는 이 가치를 라인업으로도 분화시켰다. 색을 버리고 흑백 표현에 올인한 모노크롬, 하이라이트를 부드럽게 흩뜨리는 필터를 넣은 HDF까지 — 같은 28mm·같은 바디 위에서 '쓰는 사람의 취향'을 가른다.
| 모델 | 핵심 차이 | 미국 권장가 |
|---|---|---|
| GR IV | 기본형 · 컬러 · 28mm F2.8 | $1,499.95 |
| GR IV HDF | 하이라이트 디퓨전 필터 + 전자셔터(최대 1/16000초) | $1,599.95 |
| GR IV Monochrome | 흑백 전용 센서(컬러필터 제거) | $2,199.95 |

일본 사용자 실사용 후기 10
GR은 일본에서 특히 두텁게 사랑받는 카메라다. 아래는 일본 価格.com·note·개인 블로그·SNS에 올라온 GR IV 사용기를 번역·요약한 것이다. 표현은 원문을 그대로 옮기지 않고 의미 중심으로 정리했고, 긍정·부정 평을 함께 담았다.
겉모습은 무뚝뚝하지만 전작보다 살짝 더 컴팩트해진 게 느껴진다. 2,574만 화소라 화질 밸런스가 좋고 ISO를 올려도 크게 거슬리지 않아 야간 촬영도 즐겁다. 노출 보정 버튼으로 광량을 직관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점이 특히 마음에 든다.
최상위 기종을 쓰는 입장에서도 GR IV의 화질과 조작성에 불만이 없다. 줌은 못 하지만 화질·조작은 최상급이고, 그걸 262g·청바지 주머니에 들어가는 두께로 해낸다는 게 놀랍다. 17.5만 엔을 내고도 쓸 가치가 있다고 느낀다.
고화질 카메라를 늘 몸에 지니고 일상을 남기고 싶은 사람에게 이만한 물건이 없다. 콤팩트 기종을 아무리 찾아봐도 GR의 휴대성은 압도적이라는 걸 매번 깨닫는다. 주머니에 들어가는데 이 정도로 잘 찍히는 카메라는 사실상 GR뿐이다.
배터리는 솔직히 좋다고 말하기 어렵다. 한겨울이라 그런지 30장쯤 찍으면 눈금이 하나 줄기도 했다. 길게 촬영하려면 예비 배터리나 보조 배터리가 사실상 필수고, 이 부분에선 전작 대비 진화를 체감하지 못했다.
약 0.6초 만에 켜지는 기동 속도와 풀프레스 스냅은 정말 발군이다. 과연 '스냅슈터'를 자처할 만하다. 다만 AF는 원하는 곳을 직접 탭해서 맞추는 느낌이라, 카메라의 판단과 내 의도가 어긋날 때가 있어 이 점은 과제로 남는다.
AF 속도, 배터리, 주변부 화질처럼 GR III에서 답답했던 지점들이 정공법으로 개선됐다. 큰 혁신이라기보다 '정통 진화'에 가깝다. 단 4K 동영상·EVF·방진방적이 여전히 없어, 영상·악천후·뷰파인더가 중요한 사람에겐 권하기 어렵다.
완성도 높은 정통 진화인 건 분명하지만 가격이 20만 엔을 넘어 구입엔 용기가 필요하다. 결국 "이 성능 차이에 그만한 값을 매길 수 있느냐"가 갈림길이다. 가격에 민감하거나 40mm 화각을 원한다면 중고 GR III·IIIx도 충분히 합리적인 선택이다.
GR III를 쓸 때 28mm가 너무 넓게 느껴져서, "여기 더 다가가고 싶다"는 거리감과 화각이 자꾸 어긋났다. 그래서 40mm인 IIIx로 넘어갔다. GR IV 자체는 훌륭하지만, 28mm냐 40mm냐는 결국 취향이 크게 갈리는 지점이다.
53GB로 커진 내장 메모리와 새로 추가된 앱은 편의성을 크게 끌어올린다. 통신 기능까지 폭넓게 손봤다. 다만 microSD로 바뀌고 컨트롤 다이얼이 빠지는 등, 기존 GR 사용자에겐 적응이 필요한 변화도 있다.
성능 자체는 인정한다. 문제는 '그래서 어디서 사느냐'다. 발매 후 품귀가 이어져 재고를 만나는 것 자체가 운에 가깝다. 우연히 매장에 재고가 있어 그 자리에서 결정했다는 후기가 나올 정도로, 구매 난이도가 평가만큼이나 화제다.
정리 — 누구에게 값을 하나
- 늘 들고 다니며 일상·여행 스냅을 찍고 싶은 사람
- 장면 전체를 담는 28mm 거리 사진에 끌리는 사람
- 메뉴보다 물리 다이얼, 필름 같은 조작감을 좋아하는 사람
- 최고 화질을 가장 작은 부피로 가지고 다니고 싶은 사람
- 줌과 망원, 인물 클로즈업이 주력인 사람
- 4K 영상·뷰파인더·방진방적이 꼭 필요한 사람
- 빠른 연속 AF로 움직임을 쫓아야 하는 사람
- 가격 대비 스펙 '가성비'를 최우선으로 보는 사람
GR IV는 모두를 위한 카메라가 아니다. 오히려 명확하게 한 방향으로 깎아낸 도구에 가깝다. 28mm라는 화각을 받아들이고, 작은 몸이 주는 자유를 값으로 환산할 줄 아는 사람에게, GR IV는 스펙표가 설명하지 못하는 부분에서 제값을 한다. '카메라의 가치'란 결국 몇 화소·몇 K가 아니라, 그 물건이 내게 셔터를 몇 번 더 누르게 만드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 Amateur Photographer · Digital Camera World · Lens & Shutter — GR IV 리뷰
· Luminous Landscape · PetaPixel · DPReview — 가격·라인업·스펙 분석
· 일본 사용자 후기: 価格.com 리뷰·게시판 · note · 개인 블로그 등 (번역·요약, 원문 비인용)
· 이미지: Wikimedia Commons (각 사진 캡션에 저작자·라이선스 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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