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라이카만이 만들 수 있다고 여겨졌던 35mm 레인지파인더 시스템. 그 성역에 1999년, 일본의 코니카가 카메라 한 대와 렌즈 한 묶음을 들고 정면으로 걸어 들어왔다. 그 광각 한 자루가 바로 Konica M-Hexanon 28mm F2.8이다. 단순한 "라이카 대용품"이 아니라, 코니카의 마지막 광학적 자존심이 담긴 렌즈를 깊이 들여다본다.


01라이카를 겨눈 코니카, 그리고 헥사 RF
M-Hexanon 28mm F2.8을 이해하려면 먼저 그 출생 배경을 알아야 한다. 이 렌즈는 1999년, 코니카가 야심차게 내놓은 전자식 레인지파인더 카메라 Hexar RF(헥사 RF)와 동시에 발표되었다. 라이카 M 마운트와 호환되는 바디였고, 코니카는 자사 마운트를 "KM 마운트(Konica M)"라 불렀다.
당시 코니카가 왜 이런 도전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두 가지 해석이 있다. 하나는 의욕은 넘치지만 일감은 적었던 엔지니어들의 야심찬 사이드 프로젝트였다는 설, 다른 하나는 그토록 추앙받는 라이카에 필적할 무언가를 만들어 존재감을 과시하려던 경영진의 자존심 프로젝트였다는 설이다. 어느 쪽이든, 결과는 상업적으로는 실패에 가까웠다. 레인지파인더 시장의 보수적인 분위기, 그리고 하필이면 필름 카메라 시장 자체가 급격히 쪼그라들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작된 KM 마운트 라인업은 28/2.8, 50/2(킷 렌즈), 90/2.8로 출발해 이듬해 35/2, 그리고 2001년 전설적인 50/1.2 한정판과 21-35/3.4-4 듀얼 렌즈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2003년 코니카와 미놀타가 합병하면서 KM 라인업 전체가 단종되었다. 라이카와 독립적으로 개발된 최초의 M 마운트 시스템은, 그렇게 다소 허무하지만 분명 부당한 결말을 맞았다. 28mm F2.8은 이 짧은 역사 안에서 가장 "고전적"이고 가장 실용적인 광각으로 자리했다.

02스펙 — 7군 8매, 그리고 닮은꼴의 비밀
여기서 흥미로운 점. M-Hexanon 28mm의 7군 8매 구성은 비구면을 쓰지 않은 다소 고전적인 설계인데, 이 구성이 라이카의 마지막 비비구면 광각 — 즉 4세대 엘마릿-M 28mm F2.8(Type IV)과 매우 닮았다. 엘마릿 IV가 1992년에, 헥사논 28mm가 1999년에 나왔다는 시간 순서를 생각하면, 코니카가 4세대 엘마릿을 참고했으리라는 추정이 자연스럽게 따라붙는다. 다만 이는 어디까지나 구성도와 출시 시점을 근거로 한 추정일 뿐, 공식적으로 확인된 사실은 아니라는 점은 짚어두자. 같은 초점거리·같은 최대개방이라면 비슷한 구성에 도달하는 일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03광학과 렌더링 — 25년 묵은 설계의 실력
샤프니스
필름에서는 코닥 엑타100 같은 최신 고해상 필름에서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해상력과 마이크로 콘트라스트를 보여준다. 다만 고화소 디지털 바디에 올리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개방(F2.8)에서, 특히 화면 주변부에서 약간 무르게 보일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것이 "해상력 부족"이라기보다는 "콘트라스트 부족"에 가깝다는 것. 후보정에서 콘트라스트를 올리면 상당 부분 회복된다. 콘트라스트는 더할 수 있지만 없는 해상력은 만들어낼 수 없으니, 오히려 다행스러운 약점인 셈이다.
보케와 플레어
광각치고는 의외로 보케가 좋다. 최단 거리·개방에서 쓰면 배경 분리가 가능하고, 다소 절제된 콘트라스트가 오히려 흐림을 부드럽게 만들어 준다. 그리고 진짜 강점은 역광 내성이다. 태양을 화면 안이나 가장자리에 두고 찍어도 플레어나 극단적인 콘트라스트 저하를 거의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코니카의 코팅 기술이 상당히 뛰어났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색수차와 컬러 드리프트
고대비 상황에서는 약간의 색수차(CA)가 나타난다. 조리개를 조이면 개선되지만, 하늘을 배경으로 한 나뭇가지 같은 까다로운 피사체에서는 F5.6 정도에서도 완벽하게 또렷하지 않을 수 있다. 다만 같은 시기 형제 렌즈인 90/2.8이 보이는 심한 색수차에 비하면 28mm는 훨씬 점잖은 편이다. 또한 후옥이 센서 가까이 깊숙이 들어가는 구조임에도, 라이카 M10 같은 바디에서 우려할 만한 색 변이(컬러 드리프트)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유심히 찾아봐야 오른쪽 가장자리에 보라색 기운이 살짝 비칠 정도다(구형 디지털 바디에서는 더 두드러질 수 있다).
04핸들링 — 잘 만든 금속, 그런데 포커싱 탭이 없다
빌드 퀄리티는 전부 금속과 유리로, 매우 견고하다. 라이카의 기준에 100% 도달했다고 말하긴 어렵지만, 그에 크게 뒤지지 않을 만큼 잘 만들어졌다. 초점링과 조리개링의 널링(요철) 패턴을 일부러 다르게 해 손의 감각만으로 구분할 수 있게 한 점도 세심하다.
다만 한 가지 아쉬움이 있다. 이 렌즈에는 포커싱 탭(focus tab)이 없다. 같은 코니카 광각인데도 다른 M-Hexanon 광각들은 탭을 갖추고 있어 더욱 의아한 부분이다. 탭이 없으니 6시 방향 = 1.2m 같은 머슬 메모리를 활용할 수 없고, 그저 널링된 초점링을 잡고 돌려야 한다. 0.7m 최단 촬영거리는 어차피 레인지파인더의 한계와 같으니 큰 불만은 아니다.
05"KM 마운트는 라이카에서 핀이 안 맞는다?"
코니카 렌즈를 라이카 바디에 쓸 때 가장 자주 거론되는 논쟁이다. KM 마운트가 라이카 M 마운트와 미묘하게 달라서 초점이 정확히 맞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스티븐 갠디(Stephen Gandy), 단테 스텔라(Dante Stella) 같은 레인지파인더 전문가들이 두 마운트 사이의 미세한 차이를 기록으로 남기기도 했다. 개체에 따라 라이카에서 핀이 살짝 어긋나 얇은 심(shim)을 끼워 보정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면, 28mm는 이 문제에서 가장 너그러운 축에 속한다. 광각 특유의 깊은 피사계심도 덕분에 미세한 오차가 사실상 묻히기 때문이다. 가장 까다로운 건 90/2.8이고, 28mm는 일상적으로 라이카 바디에서 무리 없이 쓸 수 있다는 평이 일반적이다. 게다가 라이카 M10처럼 EVF(비조플렉스)나 라이브뷰가 가능한 바디라면, WYSIWYG로 확인하며 찍을 수 있어 이 논쟁 자체가 무의미해진다.
06라이카와의 정면 비교 — 엘마릿, 그리고 그 너머

가장 직접적인 비교 상대는 앞서 언급한 4세대 라이카 엘마릿-M 28mm F2.8(Type IV)이다. 한 일본 리뷰어가 헥사논 28mm 리뷰 제목에 아예 "Elmarit?(엘마릿?)"이라는 물음표를 붙였을 정도로, 두 렌즈는 스펙상 쌍둥이에 가깝다.
| 항목 | M-Hexanon 28 | Elmarit-M 28 (IV) |
|---|---|---|
| 초점거리 | 28mm | 28mm |
| 최대개방 | F2.8 | F2.8 |
| 렌즈 구성 | 7군 8매 | 7군 8매 |
| 조리개 날 | 10매 | 8매 |
| 최단거리 | 0.7m | 0.7m |
| 필터 | 46mm | 46mm |
| 무게 | 약 230g | 약 260g |
| 후드 | 원형 벤티드 스크류 | 사각 후크형 |
| 발매 | 1999년 | 1992년 |

구성이 동일하고, 최단거리·필터경까지 같다. 차이라면 헥사논이 조리개 날이 더 많고(10매 vs 8매) 오히려 더 가볍다는 점 정도다. 즉 같은 세대의 비비구면 엘마릿과 비교하면, 헥사논 28mm는 결코 "싸구려 카피"가 아니라 대등한 수준의 만듦새를 갖췄다.
다만 비교 대상을 최신 엘마릿 28mm ASPH(비구면)로 옮기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설계가 수 년 더 젊은 만큼, ASPH 버전(특히 1·2세대)은 헥사논보다 광학적으로 분명히 우위에 있다. 더 가볍기까지 하다(ASPH 1세대 약 198g). 같은 28mm를 한 스톱 더 밝게 쓰고 싶다면 라이카 주미크론 28mm F2(1세대)도 무게가 헥사논과 큰 차이 없이 매력적인 선택지다.
저가 신품 대안 — 7Artisans 28mm와 비교하면?
흥미롭게도, 한 비교 테스트에서는 헥사논 28mm와 신품 7Artisans 28mm의 콘트라스트·색감이 상당히 근접하게 나왔다. 결론은 명확하다. f1.4 밝기로 미러리스에서 저조도 촬영을 노린다면 7Artisans가 낫고, 레인지파인더 바디에 어울리는 작고 개성 있는 광각을 찾는 스트리트 포토그래퍼라면 헥사논이 더 매력적이라는 것.
07디지털 바디에서 — M8, M9 그리고 그 이후

풀프레임 센서를 쓰는 라이카 M9에서는 초점면 샤프니스가 충분하고, 하늘이 화면에 들어와도 거슬리는 주변부 광량 저하가 없어 화면 전체에 걸쳐 깨끗한 사진을 얻을 수 있다. 반면 APS-H 센서(1.33배)인 M8/M8.2에서는 환산 약 37mm가 되어 광각의 맛은 덜하지만, 렌즈의 가장 좋은 중앙부만 잘라 쓰는 셈이라 결과물 화질은 오히려 안정적이다.
한 가지 더 — 중고 시장에서 이 렌즈가 옛날 렌즈처럼 뿌옇게 흐려진(밸럼/곰팡이) 개체가 드물다는 점이다. 접합에 쓰인 접착제 품질이 좋았다는 방증이며, 앞으로도 큰 문제 없이 오래 쓸 수 있을 가능성이 높다.
08장단점 정리
👍 좋은 점
- 탁월한 역광 내성, 뛰어난 코팅
- 광각치고 자연스러운 보케
- 전부 금속·유리의 견고한 빌드
- 조리개 날 10매, 0.7m 최단거리
- 중고가 대비 만듦새가 훌륭
- 흐려진 개체가 드묾(접합 품질)
👎 아쉬운 점
- 고화소 디지털 개방·주변부는 무름
- 고대비 상황의 색수차
- 포커싱 탭 부재
- KM 마운트 핀 편차(개체차)
- 최신 엘마릿 ASPH보다 광학 열세
- 단종 후 가격 상승세
09누구에게 맞는 렌즈인가
총평 ★★★★☆
M-Hexanon 28mm F2.8은 "라이카에 가장 가까운 비(非)라이카 광각" 중 하나다. 같은 세대 엘마릿과 거의 동일한 설계를 견고한 금속 경통에 담았고, 역광·보케·내구성에서 분명한 강점을 보인다. 약점은 고화소 디지털 바디에서의 개방·주변부 화질과 약간의 색수차 정도다.
50mm를 주력으로 쓰면서 대부분의 레인지파인더 내장 파인더가 지원하는 가장 넓은 화각을 한 자루 더하고 싶은 사람, 그리고 라이카 가격은 부담스럽지만 일본 광학의 만듦새를 신뢰하는 사람에게 잘 어울린다. 다만 신품 보증과 더 현대적인 시그니처를 원한다면 자이스 비오곤 ZM 28/2.8이, 최고의 광학을 원한다면 엘마릿 ASPH가 더 나은 선택일 수 있다.
대안을 정리하면 — 광학 최우선이면 라이카 엘마릿-M 28 ASPH, 신품·가성비·뛰어난 화질이면 자이스 비오곤 ZM 28/2.8, CLE용 클래식이면 미놀타 M-로커 28(단, 구매 시 접합면 분리 상태 확인 필수), 저가 신품이면 포크트랜더·7Artisans 28이 후보다. 그럼에도 헥사논 28mm만의 견고함과 "코니카가 라이카를 겨눴던 한 시대"라는 이야기를 함께 사고 싶다면, 이 렌즈는 충분히 권할 만하다.
- Macfilos, "The M Files (13): Three Konica M-Hexanon lenses" (Joerg-Peter Rau)
- Shige's hobby, "Elmarit? M HEXANON 28mm" 리뷰 및 스펙 비교표
- The Machine Planet, "Konica M-Hexanon 28mm f/2.8" (Dante Stella)
- Beers and Cameras, "Konica Hexanon 28mm vs 7Artisans 28mm M-mount"
- Konica 28/50/90mm Technical Report (코니카미놀타 기술 보고서)
- 이미지: 일부는 Wikimedia Commons (Mike Funnell CC BY-SA 3.0, Nicolas Vigier CC0, Mustafa Dogan CC BY-SA 4.0, Andrew Xu CC BY-SA 2.0), 도해·인포그래픽·연출 컷은 AI 생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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