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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얄레띠 브랜드 탐구 — 작은 모카포트가 만든 이탈리아 커피의 전설

Benjamin J 2026년 6월 7일 7분 읽기

매일 아침 수백만 이탈리아 가정의 가스레인지 위에서 “보글보글” 소리를 내며 커피를 끓여 올리는 작은 8각형 주전자. 이 모카포트 하나로 한 세기를 버텨온 브랜드가 바로 비얄레띠(Bialetti)입니다. 알루미늄으로 만든 단순한 도구가 어떻게 MoMA에 전시되고 3억 대 넘게 팔린 디자인 아이콘이 되었는지, 그 이야기를 따라가 봅니다.

1933년 출시된 비얄레띠 모카 익스프레스
1933년 세상에 나온 모카 익스프레스. 그 디자인은 지금까지 거의 그대로다. (이미지: Bialetti 공식 홈페이지)

한 알루미늄 공방에서 시작되다

이야기는 1919년, 이탈리아 북부 피에몬테주 오메냐(베르바니아) 인근 크루시날로에서 시작됩니다. 프랑스 알루미늄 산업에서 10여 년간 금속 가공 기술을 익힌 알폰소 비알레띠(Alfonso Bialetti, 1888–1970)가 알루미늄 반제품을 만드는 작은 공방을 차린 것이죠. 이 공방은 빠르게 성장해 ‘Alfonso Bialetti & C.’가 되었고, 완성품을 직접 설계·생산하는 주조 공방으로 발전하며 비얄레띠 브랜드의 출발점이 됩니다.

1919년 알폰소 비알레띠의 알루미늄 공방
1919년, 크루시날로의 알루미늄 공방 — 비얄레띠의 시작. (이미지: Bialetti 공식 홈페이지)

진짜 전환점은 1933년에 찾아옵니다. 알폰소가 가정에서도 바(bar)처럼 진한 커피를 내릴 수 있는 스토브탑 커피메이커, 모카 익스프레스(Moka Express)를 세상에 내놓은 것입니다. ‘모카’라는 이름은 세계적인 커피 산지인 예멘의 항구 도시 ‘모카(Mokha)’에서 따왔습니다. 당시는 대공황기로 사람들이 카페에 가는 일이 줄어든 시기였고, 집에서 저렴하게 ‘에스프레소 같은’ 커피를 즐기게 해 준 이 도구는 시대의 필요와 정확히 맞아떨어졌습니다.

빨래통에서 얻은 영감, 그리고 8각형의 비밀

모카포트의 아이디어는 의외의 곳에서 왔다고 전해집니다. 바로 알폰소의 아내가 쓰던 옛 빨래 끓이는 통이었죠. 비눗물을 담은 통을 불에 올리면 가운데 관을 따라 끓는 물이 올라가 빨래 위로 뿌려지는 구조였는데, 알폰소는 여기서 “끓는 물을 압력으로 밀어 올린다”는 원리를 커피 추출에 옮겨 왔습니다.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인 8각형 몸체에는 여러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아르데코풍의 각진 면은 부유한 가정에서 쓰던 은제 커피 세트의 우아함을 떠올리게 하고, 평평한 면들은 잡기 편하면서 열을 고르게 퍼뜨립니다. 한편으로는 한 손을 허리에 얹은 여인의 실루엣 — 머리, 넓은 어깨, 잘록한 허리, 주름치마 — 에서 비롯됐다는 낭만적인 이야기도 함께 전해집니다. 재료로 알루미늄을 택한 것 역시 가볍고 열전도가 좋다는 실용성과, 알루미늄을 ‘국가의 금속’으로 밀던 1930년대 이탈리아의 분위기가 맞물린 선택이었습니다.

모카포트 작동 원리 단면도
모카포트 단면. 하단(A)의 물이 끓으면 증기압이 물을 커피 가루(B)로 밀어 올려 상단(C)에 커피가 모인다. (이미지: Wikimedia Commons)

모카포트는 어떻게 커피를 내릴까?

하단 보일러에 물을 채우고 깔때기 필터에 곱게 간 커피를 담은 뒤 상단을 단단히 돌려 끼웁니다. 불에 올리면 하단의 물이 끓으면서 증기압이 생기고, 이 압력이 물을 커피층 사이로 밀어 올려 상단 챔버에 진한 커피가 고이게 됩니다. 가스가 새지 않도록 고무 패킹이 막아 주고, 압력이 지나치게 높아지면 안전밸브가 열려 위험을 막아 줍니다. 다 내려지면 특유의 “꾸르륵” 소리가 나는데, 이게 바로 불을 꺼야 한다는 신호죠.

콧수염 아저씨와 마케팅 천재 레나토

발명은 알폰소가 했지만, 모카 익스프레스를 ‘국민 브랜드’로 키운 사람은 그의 아들 레나토 비알레띠(Renato Bialetti, 1923–2016)였습니다. 전쟁 포로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레나토는 아버지가 전쟁 동안 창고에 넣어 두었던 기계를 다시 꺼내, 대대적인 광고와 전국 판매로 사업을 키웁니다. 전쟁 전 연 1만 대 수준이던 제품은 그의 손을 거치며 이탈리아 전역으로, 다시 세계로 퍼져 나갔습니다.

비얄레띠 마스코트 콧수염 아저씨 l'omino coi baffi
1958년 등장한 마스코트 ‘콧수염 아저씨(l’omino coi baffi)’. 일러스트레이터 파울 캄파니가 그렸다. (이미지: Bialetti 공식 홈페이지)

이 콧수염 아저씨는 레나토 본인을 캐리커처한 것으로, 한 손을 들어 “하나 더!”를 외치는 모습이 지금까지도 모든 제품과 로고에 새겨져 있습니다. TV 광고 코너 카로셀로(Carosello)에 꾸준히 등장하면서 브랜드 인지도는 폭발적으로 올라갔고, 당시 내건 슬로건은 짧지만 강렬했습니다 — “in casa un espresso come al bar”. 집에서도 바에서처럼 에스프레소를, 라는 약속이었죠.

“커피 한 잔 정도야 — 그런데 그게 생각만큼 쉽지 않거든요.”

주방 도구를 넘어 ‘문화 아이콘’으로

모카 익스프레스는 단순한 베스트셀러를 넘어 디자인사(史)의 한 페이지가 되었습니다. 1933년의 원형 디자인은 뉴욕 현대미술관(MoMA)과 밀라노 트리엔날레의 영구 소장품 목록에 올랐고, 설계 도면은 런던의 디자인 뮤지엄에도 전시되어 있습니다. 누적 판매량은 3억 대를 넘어섰고, 한때 “이탈리아 가정 10집 중 9집이 모카포트를 갖고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습니다.

이 브랜드에 대한 애정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일화가 있습니다. 2016년 레나토 비알레띠가 세상을 떠났을 때, 가족은 그의 유언에 따라 유골을 거대한 모카포트 모양의 유골함에 안치했습니다. 평생을 모카와 함께한 사람다운, 유머와 애정이 담긴 마지막 인사였습니다.

가스레인지 위에서 커피를 내리는 모카포트
불 위에 올린 모카포트. ‘꾸르륵’ 소리가 나면 다 내려졌다는 신호다. (이미지: Wikimedia Commons)

한눈에 보는 비얄레띠

  • 창립1919년, 이탈리아 피에몬테 크루시날로 (알폰소 비알레띠)
  • 대표작모카 익스프레스 (1933년 등장, 거의 변하지 않은 8각형 디자인)
  • 마스코트콧수염 아저씨 ‘l’omino coi baffi’ (레나토를 모델로 함)
  • 누적판매3억 대 이상
  • 소장처뉴욕 MoMA, 밀라노 트리엔날레, 런던 디자인 뮤지엄 등

모카를 넘어 — 한 세기의 진화

비얄레띠의 이야기는 모카포트에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경영권의 변화, 증시 상장, 그리고 캡슐 머신과 인덕션 대응까지 — 공식 연혁이 보여 주는 주요 장면들을 모아 봤습니다.

1993년 론디네의 비얄레띠 인수
1993

론디네, 비얄레띠를 품다

현 회장 프란체스코 란초니가 알폰소 비알레띠 & Co.를 인수, 이후 론디네와 합병됩니다.

2007년 비얄레띠 인두스트리에 증시 상장
2007

밀라노 증시 상장

7월 27일, 비얄레띠 인두스트리에가 이탈리아 증권거래소에 상장됩니다.

2010년 비얄레띠 에스프레소 캡슐 시스템
2010

에스프레소 시스템

캡슐 커피 시대에 대응해 ‘이탈리아의 커피’ 캡슐과 머신 라인을 선보입니다.

2014년 비얄레띠 모카 인덕션
2014

모카 인덕션

알루미늄에 스테인리스 보일러를 결합해, 인덕션·하이라이트에서도 쓰는 모카로 재탄생.

2020년 비얄레띠 조이아 에스프레소 머신
2020

조이아(Gioia)

깊이 34cm 미만의 초소형 에스프레소 머신. 캡슐은 재활용 알루미늄으로 친환경.

2021년 비얄레띠 페르페토 모카 커피
2021

페르페토 모카

모카 전용으로 분쇄도를 맞춘 비얄레띠의 커피. 모카 애호가를 위한 라인.

위기, 그리고 새로운 주인

한 세기를 이어온 브랜드에도 그늘은 있었습니다. 네스프레소로 대표되는 캡슐 커피의 등장은 전통 모카포트의 점유율을 잠식했고, 무리한 매장 확장과 주방용품 사업 다각화, 코로나19까지 겹치며 비얄레띠는 무거운 부채에 시달렸습니다. 2024년 비얄레띠는 매출이 늘어나는 와중에도 순손실과 8천만 유로대의 순부채를 떠안고 있었습니다.

2006년 비얄레띠 단독 매장 리테일 프로젝트
2006년 시작된 비얄레띠 스토어. 한때 공격적이던 매장 확장은 훗날 부담으로 돌아오기도 했다. (이미지: Bialetti 공식 홈페이지)

결국 2025년, 비얄레띠는 새 주인을 맞이합니다. 룩셈부르크에 기반을 둔 투자 펀드 누오 캐피탈(NUO Capital) — 홍콩 자본과 연결되어 있고 아녤리 가문의 엑소르(Exor)도 관여한 펀드 — 가 옥타곤 비드코(Octagon BidCo)를 통해 비얄레띠 지분 약 78.5%를 인수한 것입니다. 거래는 2025년 6월 마무리되었고, 밀라노 증시 상장폐지가 추진되었습니다. CEO 에지디오 코치는 유임되어 경영 연속성을 이어 가게 됐습니다.

이탈리아의 상징 같은 헤리티지 브랜드가 아시아계 자본의 품에 안긴 이 사건은, 유럽의 오래된 명품·소비재 브랜드들이 새로운 자본과 만나는 더 큰 흐름을 보여 주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모카포트라는 디자인 고전은 그대로 남되, 브랜드의 다음 한 세기는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쓰일지도 모릅니다.

집에서 모카포트로 맛있게 내리는 법

  • 하단 보일러에는 안전밸브 바로 아래까지만 물을 채웁니다. (가능하면 미리 데운 물)
  • 깔때기 필터에 곱게 간 커피를 평평하게 담되, 꾹 누르지 않습니다. 너무 다지면 과추출돼 쓴맛이 납니다.
  • 약~중불로 천천히 가열합니다. 센 불은 탄 맛의 원인이 됩니다.
  • 커피가 올라오며 “꾸르륵” 소리가 나기 시작하면 바로 불을 끄세요. 끝까지 두면 탑니다.
  • 알루미늄 모델은 세제로 박박 닦지 말고 물로만 헹구는 편이 풍미 유지에 좋습니다.

작은 알루미늄 주전자 하나가 거의 100년 동안 모습을 바꾸지 않고도 사랑받는다는 것 — 그것이 비얄레띠가 증명한 ‘좋은 디자인’의 힘입니다. 관찰에서 출발한 단순한 아이디어가, 기능과 이야기와 만났을 때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보여 주는 한 잔의 커피인 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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