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프레소에 설탕을 넣으면 커피를 모르는 사람"이라는 말, 한 번쯤 들어보셨을 겁니다. 그런데 정작 에스프레소의 고향 이탈리아에 가면 풍경이 완전히 다릅니다. 바 카운터마다 설탕 봉지가 수북이 쌓여 있고, 나폴리에서는 아예 설탕을 미리 넣은 채로 에스프레소가 나옵니다. 오늘은 "설탕을 넣어도 되는가"라는 질문에 이탈리아 현지 문화로 답하고, 에스프레소에 어울리는 설탕 리스트와 제대로 넣어 먹는 방법까지 정리합니다.
결론부터: 넣어도 됩니다, 오히려 그쪽이 전통입니다
스페셜티 커피 씬에서는 "좋은 커피는 설탕이 필요 없다"는 말이 일종의 신조처럼 통합니다. 커피를 와인처럼 복합적인 음료로 끌어올리려는 업계의 오랜 노력이 만든 문화죠. 하지만 이탈리아 에스프레소 전통에서는 정반대입니다. 미국에서 이탈리아식 로스팅을 이어가는 Mr. Espresso는 "이탈리아 에스프레소 전통에서 설탕은 거의 항상 들어간다"고 단언합니다.

이유는 역사에 있습니다. 설탕과 커피 모두 아랍 세계를 거쳐 유럽에 들어왔고, 유럽에서 사탕수수가 처음 재배된 곳이 바로 시칠리아였습니다. 이탈리아어 주케로(zucchero)가 아랍어 '알 수카르(al-sukkar)'에서 온 것도 그 흔적입니다. 지중해 일대의 커피 — 터키식, 그리스식, 아랍식 — 가 모두 진하게 달게 마시는 문화라는 점을 떠올리면, 이탈리아 남부의 단 에스프레소는 그 연장선에 있습니다.
피렌체에는 이런 우스갯소리 같은 속담도 전해집니다.
— 숟가락이 똑바로 서면, 커피에 설탕이 충분히 들어간 것이다. 피렌체 바리스타들 사이에 전해지는 속담
물론 변화도 있습니다. 이탈리아 커피 업계 자료에 따르면 전통적으로 대다수 이탈리아인이 커피에 설탕을 넣었지만, 최근에는 무설탕으로 마시는 비중이 꾸준히 늘고 있고, 바에 비치된 설탕 봉지도 과거보다 작아진 약 4g 규격이 표준이 됐습니다. 쓴맛 그대로 마시는 타치나 아마라(tazzina amara)파와 설탕파가 공존하는, 그야말로 취향의 문제가 된 셈입니다. 그러니 "설탕을 넣으면 안 된다"는 강박은 내려놓아도 좋습니다.
현지 문화 탐방 ① — 이탈리아 바의 설탕 풍경
이탈리아의 바(bar)에서 카페(caffè)를 주문하면 에스프레소가 나옵니다. 카운터에는 거의 예외 없이 설탕이 비치되어 있는데, 종류가 생각보다 다양합니다.
| 이탈리아어 표기 | 무엇인가 | 특징 |
|---|---|---|
| zucchero (semolato) | 백설탕 | 가장 기본. 봉지(bustina) 표준은 약 4~5g |
| zucchero di canna | (부분정제) 사탕수수당 | 황갈색, 당밀 풍미가 살짝 남음. 바에서 백설탕과 나란히 비치 |
| zucchero a velo | 슈가파우더 | '설탕의 베일'이라는 뜻. 제과용 — 커피엔 쓰지 않음 |
| zucchero integrale | 비정제 통수수당 | 파넬라(panela) 등. 원심분리·여과를 거치지 않아 풍미가 가장 진함 |
| dolcificante | 저칼로리 감미료 | 칼로리를 신경 쓰는 손님용으로 함께 비치 |
재미있는 건 식탁용 설탕을 둘러싼 지역별 자존심입니다. 나폴리의 커피 십계명을 다룬 현지 매체 Vesuvio Live는 "사탕수수당(zucchero di canna)은 커피 맛을 바꾸니 그냥 두라"고 잘라 말할 정도입니다. 나폴리식 진한 다크 로스트에는 풍미가 깨끗한 백설탕이 정답이라는 거죠. 반대로 토스카나나 북부의 가벼운 바에서는 황설탕 봉지를 집는 손님이 훨씬 많습니다.
현지 문화 탐방 ② — 나폴리, 설탕이 디폴트인 도시
이탈리아 안에서도 나폴리는 설탕 문화의 정점입니다. 나폴리 전통 바에서는 바리스타가 추출 전에 잔에 백설탕 한 티스푼을 미리 넣고 그 위로 에스프레소를 내립니다. 15ml 남짓한 리스트레토에 가까운 한 잔에 설탕 두 스푼을 넣는 변형도 있을 정도입니다. 현지 가이드들이 나폴리 명물 바를 소개할 때 빠지지 않는 표현이 "타치나 칼다에 이미 설탕이 들어간 채로(in tazzina calda e già zuccherato)"입니다.

나폴리식 에스프레소를 규정하는 키워드는 흔히 3C로 요약됩니다. 나폴리 사투리로 "Comm' cazz' coce" — 점잖게 옮기면 "기가 막히게 뜨겁다"는 뜻입니다. 잔은 끓기 직전의 물에 담가 데워두는 바뇨마리아(bagnomaria) 방식으로 손이 데일 만큼 뜨겁게 유지하고, 그 뜨거운 잔 속 설탕 위로 에스프레소가 떨어지니 젓기도 전에 설탕이 절반쯤 녹아 있습니다. 노련한 나폴리 바리스타는 뜨거운 잔을 매일 집어 손가락에 굳은살이 박인 것을 자랑으로 여긴다는 이야기까지 전해집니다.
그리고 나폴리 설탕 문화의 백미, 크레미나(cremina)가 있습니다. 에스프레소(또는 모카포트)의 가장 진한 첫 방울과 설탕을 격렬하게 휘저어 만드는 캐러멜색 설탕 크림으로, 잔 위에 한 스푼 얹으면 커피가 마치 디저트처럼 변합니다. 나폴리 일부 바에서는 "주케라토?(설탕 넣을까요?)"라는 질문과 함께 이 크레미나를 얹어 주는데, 이게 바로 관광객들이 "나폴리 커피는 왜 이렇게 달고 맛있냐"고 하는 비밀입니다. 만드는 방법은 아래 '설탕 넣는 법' 섹션에서 다룹니다.
— 정작 이탈리아 커피 전문가들이 나폴리바들을 돌며 같은 에스프레소를 '아마로(무설탕)'와 '설탕 한 봉지(약 6g)'으로 블라인드 비교한 적이 있는데, 다수의 잔에서 설탕이 오히려 흙내·곰팡내 같은 부정적 뉘앙스를 끌어올리고 떫은맛을 강조했다고 리뷰했습니다. 좋은 원두일수록 적은 설탕으로 충분하다는 결론입니다.
에스프레소에 어울리는 추천 설탕 리스트
한국에서 구하기 쉬운 것 기준으로, 에스프레소와의 궁합 순서대로 정리했습니다. 핵심 기준은 두 가지 — 용해 속도(에스프레소는 양이 적고 빨리 식으므로)와 풍미 간섭(원두의 캐릭터를 살릴지, 덧입힐지)입니다.
기본백설탕 (정백당 / zucchero semolato)
이탈리아 바의 표준이자 나폴리의 선택. 풍미가 중립적이라 원두 본연의 맛을 가리지 않고, 입자가 고와 25~30ml의 적은 액체에서도 잘 녹습니다. 크레미나를 만들 때도 백설탕이 기준입니다.
고운입자초미세 설탕 (카스터슈가 / Zefiro 타입)
에리다니아의 'Zefiro'처럼 결정이 극도로 고운 설탕은 뭉침 없이 순식간에 녹는 것이 장점. 빨리 마시고 자리를 뜨는 바 스타일, 혹은 아이스 음료에 특히 유리합니다. 단, 슈가파우더(전분 함유)는 커피가 탁해지니 금물.

풍미추가데메라라 (Demerara)
굵은 호박색 결정에 당밀이 살짝 남아 토피·캐러멜 풍미를 더합니다. 다크 로스트 에스프레소의 초콜릿 뉘앙스와 궁합이 탁월하고, 백설탕과 흑설탕 사이의 균형 잡힌 단맛이 매력. 입자가 굵어 녹는 데 시간이 걸리니 잘 저어줘야 합니다.
풍미추가터비나도 (Turbinado / Raw Sugar)
사탕수수즙 1차 압착에서 얻는 부분정제당. 데메라라보다 가볍고 은은한 캐러멜 풍미로, 백설탕 대체로 무난하게 쓸 수 있습니다. 'Sugar in the Raw' 같은 브랜드로 카페 시럽 문화권에서 표준처럼 쓰입니다.
소량만무스코바도 (Muscovado)
당밀을 거의 제거하지 않은 진하고 촉촉한 설탕. 흑당·럼 같은 묵직한 풍미가 에스프레소를 디저트로 만들어 주지만, 과하면 원두 맛을 완전히 덮습니다. 평소 양의 절반부터 시작하세요.
클래식각설탕 (zolletta)
유럽 카페 문화의 낭만. 1개가 보통 3~5g으로 계량이 정확하다는 실용적 장점도 있습니다. 크레마 위에 살짝 올려 가라앉는 걸 지켜보는 것 자체가 에스프레소의 작은 의식이죠.

설탕 넣어 먹는 방법 — 기본부터 크레미나까지
① 기본: 크레마를 존중하는 순서
- 에스프레소가 나오면 먼저 한 모금. 설탕 없이 원두의 캐릭터를 확인합니다. 이탈리아 바에서도 흔한 습관이고, 얼마나 넣을지 감을 잡는 단계입니다.
- 설탕을 크레마 위에 고르게 뿌립니다. 좋은 크레마라면 설탕이 몇 초간 크레마 위에 '얹혀' 있다가 천천히 가라앉습니다 — 크레마 밀도를 가늠하는 바리스타들의 오랜 테스트이기도 합니다.
- 2~3초 기다린 뒤 바닥까지 짧고 부드럽게 젓습니다. 거칠게 휘저으면 크레마가 다 깨집니다. 스푼으로 잔 바닥을 3~4회 둥글게 긁어주는 정도면 충분합니다.
- 두세 모금에 나눠 마시고, 마지막 모금을 기대하세요. 덜 녹은 설탕이 바닥에 살짝 남으면 마지막 모금이 가장 달콤해집니다. 일부러 덜 젓고 이 '단 피날레'를 즐기는 이탈리아인도 많습니다. 바닥에 남은 설탕을 스푼으로 떠먹는 것도 현지에선 흔한 마무리입니다.
② 나폴리식: 크레미나 만들기
집에서 모카포트나 에스프레소 머신으로 재현할 수 있는, 나폴리의 설탕 크림입니다.
- 작은 컵에 백설탕 3~4티스푼을 담습니다. 2~3인분 기준. 고운 설탕일수록 잘 됩니다.
- 추출되는 커피의 '첫 방울' 1~2티스푼만 설탕 위에 떨어뜨립니다. 모카포트라면 처음 올라오는 가장 진한 부분, 머신이라면 추출 초반의 농축액입니다.
- 티스푼으로 격렬하게 휘젓습니다. 1~2분간 빠르게 저으면 색이 점점 밝아지며 캐러멜색의 윤기 나는 크림이 됩니다. 숟가락을 들었을 때 리본처럼 떨어지면 완성.
- 추출이 끝난 에스프레소를 잔에 담고, 크레미나를 한 스푼 얹습니다. 살짝만 저어 마시면 거품처럼 떠 있는 단맛과 진한 커피가 한 모금에 섞입니다.

참고로 이 기법은 이탈리아 이민자들의 커피 문화가 카리브해로 건너가 만난 쿠바 카페시토(cafecito)의 '에스푸미타(espumita)'와 사실상 같은 원리입니다. 쿠바식은 백설탕이 정석 — 빨리 녹고 매끈한 거품이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흑설탕 계열로 만들면 거품이 무겁고 당밀 풍미가 강해져 또 다른 디저트가 됩니다.
③ 양과 타이밍, 그리고 예외
| 상황 | 권장 |
|---|---|
| 다크 로스트 에스프레소 (이탈리아 스타일) | 백설탕 2~4g. 쓴맛-단맛 균형이 가장 좋은 구간 |
| 미디엄 로스트, 초콜릿·견과 노트 | 데메라라/터비나도 소량 — 캐러멜 풍미가 노트를 증폭 |
| 라이트 로스트, 산미 중심 싱글 오리진 | 되도록 무설탕. 섬세한 산미와 플로럴 노트가 설탕에 덮임 |
| 아이스 에스프레소/샤케라토 | 설탕은 뜨거울 때 먼저 녹이거나 초미세당 사용 (찬 액체에선 거의 안 녹음) |
마지막 원칙 하나. 설탕은 커피가 가장 뜨거울 때 넣으세요. 에스프레소는 30ml 남짓이라 1~2분이면 온도가 뚝 떨어지고, 식은 커피에서는 설탕이 제대로 녹지 않아 겉돕니다. 나폴리가 잔을 손이 데일 만큼 뜨겁게 데우고 설탕을 추출 전에 미리 넣는 것도 결국 이 원리입니다.
마치며 — 설탕은 넣어도 됩니다
에스프레소에 설탕을 넣을지 말지는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어느 전통에 서 있느냐의 문제입니다. 산지의 캐릭터를 음미하는 스페셜티의 길도, 뜨거운 잔에 설탕을 미리 녹여 3초 만에 털어 넣는 나폴리의 길도 모두 정답입니다. 다음에 에스프레소를 받으면 먼저 한 모금 그대로, 그다음 설탕 반 스푼 — 두 세계를 한 잔에서 오가 보세요. 그리고 주말엔 모카포트로 크레미나에 도전해 보시길. 주방이 잠깐 나폴리가 됩니다.
☕ 본문의 크레미나 만들기를 재료·단계별 타이머가 달린 레시피로 정리해 두었습니다.
모카포트만 있으면 바로 따라 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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